구원



이석민, 김민규

겸규전력 ; 악몽


w. 엔씨





             또 악몽을 꾸었다.

 

 

팽팽한 어둠이 낮게 깔린 학교 복도에서 알 수 없는 커다란 손에 질질 끌려가는 꿈이었다. 그 손의 주인은 소름끼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의 머리채를 험하게 잡아끌었다. 아이는 운동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석민을 애타게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서늘한 복도 바닥과 깜박거리는 창백한 전등은 늘 꾸던 꿈과 같은 광경이었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 전날에도 본 광경이었다. 심지어 끌려가는 그 순간마저도 그것이 꿈이란 걸 자각하고 있었을 정도로 익숙했다. 그런데도 너무 아팠다. 꿈이란 걸 아는데도 너무 아팠다. 모순적인 고통이 온몸을 휘감고 몸 속 어딘가 내재되어 있던 해묵은 공포가 조용히 싹을 텄다. 아이는 끈덕진 무력감을 느끼며 아가리를 벌린 어둠 속으로 깊숙히 빨려들어갔다.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교무실 안에서 아이는 뺨이 부르트도록 얻어맞았다.

 

 

             부모도 없는 애새끼가 어디 감히 눈깔을 치켜떠?

 

 

추악한 목소리가 아직 어렸던 정신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두피가 찢겨지고 살가죽이 비명을 질렀다. 섬뜩한 핏줄기가 이마를 타고 콧등으로 흘렀다. 살기 위해 발버둥칠 때마다 군데군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바깥 세상과 고립된 건물 안에서 어린 아이는 폭발적인 잔인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꿈 속의 그는 초라하고 나약했다.

 

 

나는 왜 불합리한 죄악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첨예한 폭력과 이유 없는 분노의 찌꺼기 속에서 그는 철저하게 더럽혀졌다.

 

 

 

 

 

 

 

            그을린 꿈의 편린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혼탁하고 건조한 눈동자가 회색 천장을 배회했다. 같은 꿈만 벌써 나흘 연속이었다. 두 손가락으로 볼을 쓸어내려 보았다. 상처 없이 멀끔한 피부가 만져졌다. 민규는 심란한 얼굴로 복잡한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같은 꿈을 몇번째 꾸는 건지,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때의 일을 머릿속에서 통째로 뽑아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허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기억이라는 게 있고, 민규의 꿈 역시 그런 류의 것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눈만 감으면 마치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다.

 

 

불규칙적인 호흡을 가다듬느라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꿈 속에서 본 그 얼굴이 여전히 시야에 아른거렸다. 더러운 욕망에 얼룩져 있던 그 시커먼 얼굴이 어쩌면 남은 평생동안 자신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문득 화가 났다.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원치 않은 일을 당해놓고 원치 않게 그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아야 한다니.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때마다 오래된 침대가 삐걱거렸다. 베개가 체념 섞인 눈물로 젖어 들어갔다. 민규는 몸이 오슬오슬 떨리는 것을 느끼며 습관적으로 자신의 옆에 누워있을 석민을 찾았다.

 

 

석민아…”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덜컥 겁이 났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텅 빈 옆자리를 발견한 민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어젯밤 함께 숙제를 하다 같이 잠들었었는데 지금은 싸늘하게 식은 베개 하나만이 그의 온기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스치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방안은 누구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은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있었다. 자신을 부모도 없는 애새끼라고 칭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귓가에 맴돌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역시 무섭고, 또 외로웠다. 민규는 석민을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걸음을 한발짝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방바닥에서 끼익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뭐해? 안 잤어?”

 

 

석민은 거실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보통 한번 자면 아침이 될 때까지 깨지 않는 민규가 이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이 놀라운지, 석민은 벽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무덤덤한 얼굴을 보자 그제서야 안심이 된 민규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화장실 가려고 깼어.”

 

 

악몽을 꿨다는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석민이 걱정할 테니까. 그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듯 석민이 나른하게 웃음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바보같게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어 놓는 손길이 여느 때와 같이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눈을 감았다. 내내 쉴새없이 쿵쾅거리던 심장이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석민아. 또 그 꿈을 꿨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기적인 목소리가 참지 못하고 꿈틀거렸지만 도로 삼켜냈다. 평생 오늘과 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해도 석민이 이렇게 곁에만 있어준다면 괜찮았다. 아니,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질 거다. 민규는 확신했다.

 

 

민규야.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늦게 와서 미안해.’

 

 

8년 전 그 날, 자신을 구하러 온 석민이 그렇게 말해줬으니까.

 

 

가만히 코를 파묻은 석민의 몸에서 봄냄새가 났다. 민규의 입가에 물결처럼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석민아, 보고 싶어. 보고 있는 데도 보고 싶어.

 

 

그래, 빨리 자.”

 

 

아직 잠이 덜 깬 듯 석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두근거렸다. 그가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고 먼저 방에 들어가고 난 뒤에도 민규는 한참동안 거실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있다가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황홀한 마법에 넋을 놓고 빠져있다가 뒤늦게 풀려난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몽롱함에 졸음이 몰려왔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수라도 하기 위해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스위치를 켰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에 불이 들어온 순간, 민규는 허망함에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는 보기 흉한 눈물 자국들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화장실에 가려고 깼다는 그의 거짓말에 절대로 속아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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