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이석민, 김민규

월간밍른 ; 가을 밤,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w. 엔씨


bgm ; 불꽃심장 - 그래도 넌 나를 택했을까





             M은 아른거리는 촛불 아래 환하게 빛나는 S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S는 세상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한 M은 들고 있던 양초를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촛농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세상과 단절하기 위해 스스로 오른손의 신경을 끊어버린 뒤로 M은 두 번 다시 아픔을 느낄 수 없었음은 물론, 그토록 사랑하던 바이올린도 켤 수 없었다. MS의 침대 옆자리에 소리 없이 걸터앉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텐데.

 

 

            이기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혀끝에서 똬리를 틀었다. 커튼 밖은 여전히 캄캄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간은 많았다. M은 생각보다 침착한 제 자신에 놀라며 S의 소매 단추를 끌렀다. 그의 굵은 손목이 어둠 속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MS의 손목뼈를 가로지르는 길다란 흉터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이 옅은 흉터 하나가 모든 일의 원흉이자 시발점이었다. M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옛 일에 토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했다. 그날의 부모님은 평소보다 배는 초조하고 부산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시간을 확인했고 어머니는 좀처럼 자리에 앉지를 못 하고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아직 어렸던 M은 느닷없이 숨바꼭질을 하자던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안방의 구석 자리를 차지한 작은 옷장 속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비좁은 문틈 새로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찾아 헤매는 모습도, 아버지가 해탈한 표정으로 담뱃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도, 갑자기 들이닥친 이름 모를 괴한이 부모님의 목숨을 손쉽게 앗아가는 모습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방바닥에 고꾸라진 부모님의 몸이 싸늘한 고깃덩이로 식어가고 나서야 M은 부들거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옷장 밖으로 기어나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머리가 쉴새없이 지끈거렸다. 부모님의 시체 아래 고인 핏물은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검붉고 끈적였다.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남겨진 물건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책장 사이에 꽂혀있던 비상용 통장과, 살인범이 흘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너덜너덜한 지갑 하나. M은 그 지갑에 들어있던 사진 속 남자아이의 얼굴과 그의 손목에 난 흉터를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 S는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고 또 그만큼 쾌활한 학생이었다. 보기만 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웃음을 지을 줄 알았으며 장난은 치되 선은 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두들 S를 좋아했고 M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저 동경이나 우정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에게 S는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유일한 세계이자 탈출구였다.

 

 

M은 몇 년 전의 자살 시도로 인해 더이상 바이올린은 켤 수 없게 되었지만 음악을 완전히 놓지는 못 했다. 그는 작곡의 길로 접어들었고 S는 같은 학교에서 보컬을 전공하고 있었다. 비록 서로 추구하는 음악의 색깔은 달랐지만 둘은 종종 협업을 하기도 했고 서로의 작업물에 세세한 감상평을 남겨주기도 했다. S는 몰랐겠지만, M이 쓴 곡들은 사실 모두 그를 생각하며 쓴 것들이었다. M에게는 S가 그의 아폴론이었다. 그는 S를 위해 제 모든 청춘과 음악을 쏟아부었다.

 

 

MS를 비롯한 네 명의 친구들과 항상 어울려 다녔지만 그들 모두와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S를 제외한 나머지 셋 중 하나인 A는 매번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는 M에게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B 는 말수가 적고 음침한 인상의 M을 곱게 보지 않았다. CM을 아예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M은 늘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도 S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당구장에서 다같이 짜장면을 먹을 때에도 저 혼자 구석에 앉아 악보지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고, 피씨방에서도 남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할 동안 혼자 음악 프로그램을 가지고 노는데 여념이 없었다. M은 그들이 자신을 마뜩찮게 여긴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해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쓸모 없는 것이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S는 언제나 친구 이상의 존재였고 그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S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여자 관계가 복잡했고 툭하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싫은 것을 싫다고 딱 잘라 말하지 못 하는 유한 성격도 그에 한몫했다. S는 자신의 그런 점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거라 판단을 내린 건지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우유부단함 때문에 끝맺음을 확실히 하지 않아 고의는 아니었지만한번에 여섯 명의 여자를 사귀게 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뒤처리는 항상 M과 친구들의 몫이었다. MS를 대신해 여자들에게 해명을 하러 다닐 때마다 애꿎은 오해와 눈초리도 받고 가끔 심할 때는 이유 없이 얻어맞기도 했다. 그래도 M은 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S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S는 저 때문에 덩달아 욕을 먹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는지 한동안 학교에도 안 나오는 듯 했으나 며칠만 지나면 다시 원상복귀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S의 전 여자 친구 중 하나가 그와 헤어진 뒤 홧김에 근거 없는 루머를 학교 게시판에 퍼뜨린 것이었다. S가 그의 전공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둥, 수준 이하의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인맥으로 부정 입학을 했다는 둥, S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거짓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터무니없는 글이었다. 게시글은 금방 삭제되었지만 이미 조회수가 500을 넘긴지 오래였고 삽시간에 다른 포털 사이트에도 복사되어 원문 그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M도 그 조회수 500 에 끼어 있었다. S의 실명이 거론되어 있을 뿐더러 그의 사진까지 떡하니 올라와 있는 그 게시글을 보고도 M은 설마 이걸 믿는 사람들이 있겠어, 하고 안일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그 수위와 부피를 키워나갔다. S 장본인이 그 소문을 직접 접했을 때 즈음에는 그의 이미지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있었다. 그는 결국 사건이 터지고 일주일 만에 대학을 중퇴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M도 학교로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S는 그렇게 된통 데인 뒤에도 여전히 여자 친구를 뒤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M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 하면서도 끝내 그의 곁을 떠나지 못 했다.

 

 

좋아해.”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한 날 MS에게 고백했을 때에도 S에게는 이미 두 명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S가 그를 받아준 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곁에 있어만 줘.”

 

 

단순한 동정심, 혹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이유에선지 S는 그 날 이후로 모든 여자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틈만 나면 여자를 만났던 이유는 M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물론 M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손톱만큼을 나눠주면서 그게 자신의 전부인 양 얘기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는 일방통행이라도 괜찮다는 M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이 M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상습적으로 악몽을 꾸는 그를 힘껏 껴안아 달래주고 그의 얼굴에 정성스레 입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의심이 많은 M도 가끔은 S가 자신을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MS의 가족 사진에서 15년 전 그 괴한의 얼굴을 발견하고도 그를 쉽사리 놓지 못 했다. 그의 손목에 난 오래된 흉터를 보고도, 그의 아버지와 똑닮은 눈매를 보고도 못 본 척 시선을 회피했다. 설령 S가 그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SS일 뿐이라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M은 흔들리는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S에게 다가갔다. 신경이 파열된 오른손 위로 멀쩡한 왼손을 겹쳐쥐고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눈물이 눈꼬리를 비집고 흘러나와 S의 베개를 적셨다. 네가 그 사람의 아들인 줄 알았더라면 널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괜찮아. 나를 믿어주지 않아도 괜찮아 민규야.’

‘…’

그래도 널 사랑해.’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M은 팔에 무게를 실어 잠든 S의 목을 억세게 졸랐다. 한밤중의 습격에 S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위에 올라탄 M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쳤다. 침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M은 그의 목을 놓아주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시야를 차단해서 다행이었다. S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S의 시선이 M에게로 닿았다. 덜컹거리던 침대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고 고요한 적막만이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S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M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S의 두 눈이 조용히 닫히는 것을 보면서 M은 핏기가 가신 입술을 달싹거렸다.

 

 

미안해.”

“…”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거, 거짓말이었어.”

“…”

 

 

M이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머릿속에 가득찬 낱말들을 힘겹게 뱉어냈다.

 

 

날 좋아해줘.”

 

 

M은 자신의 뻔뻔함에 역겨워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입 밖으로 토해낸 진심은 얽히고 설킨 거미줄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렇게 한데 뒤얽힌 거미줄은 오히려 제 주인을 옭아매어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

“…그리고 용서해줘.”

 

 

S는 더이상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M은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음악도 사랑도 모두 죽고 없는 것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후회한다 해도, 이제는 너무 늦었다.

 

 

MS의 목에서 손을 떼고 전날 밤 침대 밑에 미리 놓아두었던 기름통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미련과 원망과 함께 쏟아부었다. 침대 시트가 천천히 젖어들어갔다. M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탁자 위의 촛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흥건히 젖은 침대 위로 순식간에 불이 붙어 M을 잡아먹을 듯이 높게 치솟았다. M은 선홍빛으로 타오르는 불길의 중심에서 S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오른손에 먼저 불길이 번졌다. 살갗이 타는 냄새가 방안을 빈틈없이 메웠다. M은 뼛속까지 녹아드는 불길 속에서 S가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환상을 보았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도 같았다. MS의 시체를 감싸안고 붉은 화염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부모 없이 혼자 자라야 했던 외로움을 S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너와 함께할게.

 

 

M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불길 아래 피어난 두 쌍의 그림자가 입을 맞추었다. 가을 밤하늘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4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규] Always with me  (0) 2017.01.29
[겸규] 이 바보야  (2) 2016.12.18
[겸규] 너에게 난, 나에게 넌  (0) 2016.12.11
[겸규] 미지수  (0) 2016.12.10
[겸규] 네로  (0) 2016.11.27

+ Recent posts